천생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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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대는 천생연분이라는 말을 알고 계세요?
물론 알고 계시다구요?
그럼, 혹시 그대가 지금 알고 계시는 천생연분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란 뜻의 '天生緣分'아닌지요?
자, 그럼 이제 다시 여쭤볼께요.
'千生緣分'을 알고 계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생연분의 진짜 어원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잘 알지 못한채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대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바로 한 생(一生)이랍니다.
그대가 만약에 다음 생에 또다시 인간으로 태어나 살 수 있게 된다면, 두 생(二生)이구요.
그렇기 때문에 천생(千生)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 천번을 살아야 된다는 뜻이겠지요.
그렇게 천번의 생을 살아가면서 계속하여 인연을 맺게 되는 사이를 일컬어서 '천생연분(千生緣分)'이라고 한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이야기 하는 천생연분(天生緣分 : 하늘이 맺어준 인연)보다는
천생연분(千生緣分 : 천생을 살면서 맺게되는 인연).. 이 말이 제게는 더 의미깊게 다가옵니다.
그대는 어떠세요.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생이...
천생의 시작인지, 아님 천번째 생인지 도무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답니다.
그대가 사랑하고 있는 그 누군가가, 그대가 다음생에 만나서 다시 사랑하게 될 사람인지, 그러한 인연의 사랑이 아닌지... 결코 알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런 좋지않은 생각만 하게 된다면, 그대는 곧 우울해 지는 마음을 느끼게 될 거에요.
하지만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그대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몇십, 몇백생을 거듭하는 동안 만나온 바로 그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알 수는 없겠지만... 만약, 지난생을 사는 동안에 그대와 그 사람이... 애절하고 아픈 사랑을 했었다면 이번 생에서는 그 사람을 위해서
아낌없이 모든것을 다 베풀어 주어야 하는거 아닐까요?
어쩌면, 아주 어쩌면... 지난 어느 생에서인가 지금 그대곁에 있는 그 사람이,
그대를 위해 대신 목숨을 버렸는지도 모르니까요.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세요.
아낌없이....
출처
점심 먹고 한숨 눈을 붙이면 오후 4시를 알리는 자명종처럼 옆집아저씨 경운기소리가 단잠을 깨웁니다. 화사한 꽃무늬 모자를 눌러쓰고 경운기 뒷좌석에 꼭 매달린 아주머니는 천생연분입니다. 항상 말없이 일만 묵묵히 하시는 아저씨에게는 조근조근 얘기도 잘하는 아주머니가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가요?
아저씨네 밭과 이웃해 있는 다른 아주머니는 5년 전 아저씨를 잃고 항상 손수레를 밀고 홀로 농사를 지으십니다. 고추를 한 포대 따도 지고 갈 수가 없으니 아주머니는 빈손으로 밭에 오시는 경우가 없습니다. 직업군인인 아들이 휴가를 받아 한 번씩 다녀가 면 소독을 해주고 갑니다. 어머니 등에 진 농약 통을 더 이상 보기만 할 수 없으니 내년에는 제발 농사일 그만 하라고 성화랍니 다. 둘이서 해도 힘겨워서 남편 몰래 혼자서 울기도 하는데 아주머니는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짐작이 갑니다.
아주머니는 애쓰는 우리 부부가 애처로운가 봅니다. 오늘도 배추를 심고 있으니 곁에 오셔서 한수 가르쳐 주십니다.
“왜 일일이 구멍을 뚫고 다녀?” 배추는 호미로 흙을 살짝 들어 모종을 넣고 호미 끝으로 눌러주어야 잘 산다고 손수 모범을 보이십니다.
“올해 농사만 하고 서울로 가. 왜 이쁜 색시 고생시켜.” 아주 머니는 남편의 얼굴도 보지 않고 배추를 열심히 심으면서 말씀하십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동네로 시집와 이날까지 농사를 지었건만 농사지어서는 돈이 안 된다며 애들 생각해서 서울로 가랍니다.
남의 밭 도지로 얻어 고추농사 지어 한 번도 못 따고, 장마에 다 죽어 삭정이 된 고춧대를 밭둑에 쌓아놓고, 풀을 깎고 배추를 심어보겠다고 애쓰는 우릴 보고는 우두커니 서서 며칠을 지켜보 시더니 오늘은 한 말씀 건네시려고 일부러 배추를 심어주러 오셨습니다.
지난 겨울부터 시작된 고추모종 기르기부터 밭을 갈고 비닐로 멀칭(mulching)을 하고, 아이들까지 동원되어 고추모종을 심고 너 무 좋아서 잠이 안 왔습니다. 그날 밤 늦도록 삼겹살을 구워서 막걸리파티를 했습니다.
품앗이로 온 동네 선배와 새로 귀농한 후배네 가족이 모두 모여 서 풍년을 기원했습니다. 비료 없이 모종을 키우니 옆집에 심은 고추는 우리 것보다 세 배는 더 큽니다. 좋은 효소와 생선액비로 영양을 주고 아이들과 힘을 합쳐 말뚝을 박고, 줄을 매주고 김 을 매고 곁순을 따주고, 날마다 고추들과 인사하며 잘 자란다고 칭찬요법을 썼더니 칭찬에는 고래도 춤춘다는 말처럼 정말로 우리 집 고추가 옆집 고추를 따라잡았습니다.
고추는 조랑조랑 매달리고 날마다 쑥쑥 자라서 두 번째 세 번째 줄을 매주고도 고춧대가 휘청거릴 정도로 잘 되었습니다. 우리 고추밭 풀 걱정으로 동네 어른들 얘깃거리가 하나 는 것은 덤이 었지요.
그렇게 무성하던 고추가 그만 마지막 장마에 모두 가버렸습니다. 600평 밭의 고추가 뒤도 안돌아보고 한 놈도 살지 못하고 100% 다 한방에 날아갔습니다. 너무나 황당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고춧대를 베어내면서 울었습니다. 남편 몰래 울고 삭히느라 입안이 다 헐고 밥맛을 잃어버려 가끔씩 밭에서 일어?
し존? 현기증이 납니다. 하늘과 땅이 함께 돌아서 밭에 서 있는 나는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아찔합니다.
남편이 정성들여 써내려간 생산일지도 모두 휴지조각이 되었습니다. 빛바랜 일기장처럼 책꽂이 높은 곳에 보관했다가 내년에 다 시 참고해서 잘 써야지요. 배추모종을 다 심고 정리해서 나오니 벌써 어둑해졌습니다.
“이거 가지고 가서 장 지져 먹어. 아까 내가 실없는 소리 했지? 아들 같아서 그랬어.”
무를 솎아서 한 아름 안고 나오시며 미안해하십니다. 모두가 자 식 같고 어머니 같고 그러하겠지요. 농부의 마음 농부가 알아주 지 누가 알아주겠어요. 아주머니는 내년에는 농사를 그만 하시려고 합니다. 아들이 휴가 내서 땀 흘려 도와주러 오면 마음이 너 무 안 돼서 그만 하신답니다.
착한 아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아내를 데리고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 하겠다고 들어온 것을 내쫓았다고 합니다. 어미가 평생을 한 고생을 며느리에게 대물림할 수 없다고 당신마저 농사 안 하겠다고 억지로 거짓말을 했답니다. 자식 같은 젊은이들이 농사를 짓고 살겠다고 괴산 골짜기까지 들어 왔으니 바람만 불어도 전
화하는 우리 어머니마음처럼 안쓰럽고 걱정스러우시겠지요.
벼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우렁이색시는 부지런히 풀을 잡고 열심히 알을 낳아서 논둑에는 빨간 꽃이 핀 것처럼 우렁이 알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은 종족보존을 위해 필 사적으로 몸부림칩니다.
모든 풀들은 씨앗 만들기에 여념이 없고 봄에는 꺽다리 계란꽃 망초가, 요즘엔 난쟁이 망초인데도 꽃을 피우고 씨앗을 잔뜩 달 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풀씨 중에 제일 무서운 놈이 피입니다. 여름이 가고나니 온통 그놈의 세상입니다. 지난 봄에 피 씨를 조금 얻어왔습니다. 그분은 이제 피를 키워볼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피는 잡초이니 병도 없고 잘 쓰러지지도 않으니 분명 대풍이겠지요. 생전 처음이라 정말 피도 씨앗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예전엔 쌀이 없어 피죽을 먹었다는군요. 좁쌀 만한 뽀얀 알갱이는 싸래 기 같기도 하고 그 작은 낟알을 골랐을 그분의 정성을 생각해서 아껴두고 있습니다. 아주아주 허기진 날 피죽을 한번 쒀 먹어보 려고요.
이 뜨거운 햇살 맞으며 벼 낟알이 굵어지고 배추속이 꽉 차면 가을은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오겠지요. 고추농사 훌훌 털어버리고 배추농사 잘 지어서 우리 집에 시집보내 달라는 친구의 가을배 추 주문장을 보고 웃습니다.
작년에 늦게 주문해서 못 받았으니 올해는 고추 심을 때부터 주 문한다는 제주에서 온 편지도 모두 우리의 사촌이고 이웃이고 희망입니다. 너희들 모두 세상에 나가거든 노란 배추 속처럼 달콤 하게 살라던 은사님의 귀한 말씀처럼 우리 배추도 노랗게 꽉 채 워서 도시로 시집보내야겠지요.
[유연숙 / 농부(충북 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