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노트/마음의 뜨락

시ㅣ 술에 취한 바다 -이생진

시리이 2004. 7. 10. 10:34

    여연화!


      
      

      술에 취한 바다




      詩 이생진 아침 6시 어느 동쪽이건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 피운다. 태양은 수 만개,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 온 해를 보라. 성산포에서는 푸른색 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설사 색맹일지라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 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바람이 심한 날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을 한다. 그러다가도 해가 뜨는 아침이면 말보다도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술을 마실 때에도 바다 옆에서 마신다. 나는 내 말을 하고 바다는 제 말을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드는 파도 소리에 귀를 찢기 운다. 그래도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긴 적은 없었다. 모두 막혀 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땐 차라리 눈을 감자. 눈감으면 보일 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 있는 것처럼 보일 거다. 밤으로도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태어나 바다로도 닳지 않는 진주로 살 거다. 일출봉에 올라 해를 본다. 아무 생각 없이 해를 본다. 해도 그렇게 날 보다가 바다에 눕는다. 일출봉에서 해를 보고 나니 달이 오른다. 달도 그렇게 날 보더니 바다에 눕는다. 해도 달도 바다에 눕고 나니 밤이 되어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바다에 누워 밤이 되어 버렸다. 날짐승도 혼자 살면 외로운 것, 바다도 혼자 살기 싫어서 퍽퍽 넘어지며 운다. 큰산이 밤이 싫어 산짐승을 불러오듯 넓은 바다도 밤이 싫어 이부자리를 차내 버린다. 사슴이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밤을 피해 가듯 넓은 바다도 물 속으로 물 속으로 밤을 피해 간다. 성산포에서는 그 풍요 속에서도 갈증이 있다. 바다 한 가운데 풍덩 생명을 빠뜨릴 순 있어도 한 모금의 물을 건질 수는 없다. 성산포에서는 그릇에 담을 수없는 바다가 사방에 흩어져 산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은 가장 죽기 좋은 곳. 성산포에서는 생과 사가 손을 놓지 않아서 서로가 떨어질 수 없다.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 넋. 파도는 살아서 피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워 할 것도 없이 돌아선다. 사슴이여, 살아 있는 사슴이여. 지금 사슴으로 살아 있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꽃이여, 동백꽃이여. 지금 꽃으로 살아 있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슴이 산을 떠나면 무섭고, 꽃이 나무를 떠나면 서글픈데, 물이여, 너 물을 떠나면 또 무엇을 하나. 저기 저 파도는 사슴 같은데 산을 떠나 내도네. 저기 저 파도는 꽃 같은데 꽃밭을 떠나 시드네.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 넋. 파도는 살아서 피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움도 없이 말하지 않지만...... 어망에 끼었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수문에 갇혔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갈매기가 물어 갔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하루살이 하루 산 몫의 바다고 빠져나가 한자리에 모인 살결이 희다. 이젠 다시 돌아갈 곳이 없는 자리 그대로 천년 만년 길어서 싫다. 꽃이 사람된다면 바다는 서슴지 않고 물을 버리겠지. 물고기가 숲에서 살고, 산토끼가 물에서 살고 싶다면 가죽을 훌훌 벗고 물에 뛰어들겠지. 그런데 태어난 대로 태어난 자리에서 산신께 빌다가 세월이 간다. 수신께 빌다가 세월이 간다. 성산포에서는 설교는 바다가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놀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은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움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무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이를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이를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 나무에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 덜컹, 노을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놓아주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님 육십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랑......






      이생진님의 시가 라디오의 전파를 타고 흘러 나왔던 그 시절..나
      시집을 손에 띠지 않고 많이도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시절 전파를 타고 흘러 나오면 
       읊주리면서(이 단어가 맞는지 모르겠다????)..
      시에 젖어서 ..차를 마시고.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지금은  기억이 가물거리고 아니  
      없어졌다는 것..그 표현이 적절하겠구나......
      잊혀지는 것은 정말 싫다.
       
      시집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