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노트/마음의 뜨락

내가 나를 돌봐야 해요

시리이 2006. 9. 10. 07:02

내가 나를 돌봐야 해요

옥순은 30대, 나는 40대, 그리고 행순 여사는 50대 중반이다. 셋은 파트타임 일을 마치고 귀가하기 전 마지막으로 쇼핑센터에 들러 장보기를 하기로 했다. 살 것을 다 사고 한 시간 후에 1층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세상엔 좋은 것으로 넘쳐난다. 그래서 쇼핑을 하다보면 사야 될 것이 그리고 사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지고 지갑 속을 생각하면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단단히 마음먹지 않는 한 꼭 생각지 않은 물건을 사게 된다. 그래서 쇼핑을 하면서도 최초의 온 목적을 애써 기억해야 한다.

가방이며 신발이며 화려한 옷들이 넘쳐난다. 계절이 바뀌고 있으니 이제 여름 제품은 모두 세일에 들어갔다. 아이들 옷도 이제 여름제품은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나는 애초에 식료품 쪽에 가서 저녁 먹을 반찬만 사려고 들어섰다. 지갑 속 내용도 빈약해서 다른 것을 살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동복 매장을 지나가자니 아이들 옷도 할인이다. 그중 너무나 예쁜 푸른 색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고 딸아이 생각이 났다. 몇 번을 망설이고 왔다갔다 하다가 그 원피스를 샀다. 그러고 나니 저녁거리 살 돈이 얼마 남지 않아 나는 간신히 고등어 한 마리를 샀다. 더 이상 무엇을 살 재력(!)이 안되니 일찌감치 1층 로비에 와 있었다.

한참을 혼자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행순여사가 보인다. 그런데 손에는 큼지막한 이불가방이 들려 있었다. 나는 화들짝 반기며 다가가 “아니 웬 이불이래요?”하고 물었다.
“응, 곧 가을 되니까 우리 영감하고 덮을 이불 샀어“ 그런다.

그런데 30대인 옥순은 언제나 나타나려는지 감감 소식이 없다. 우리가 지루해할 즈음 옥순은 한아름 물건을 안고 생글 생글 웃으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 옥순이는 자기가 듣고 싶은 음반이며 읽을 책이며 모두 자기의 필요한 것만 사왔다.

“야, 진짜 너 심하다. 어떻게 니 물건만 잔뜩 사왔냐? 젊으니까 다른가 보네!“ 하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고등어 한마리 달랑 들은 내 보따리를 보자니 한없이 초라해졌다. 아마 나는 돈이 더 넉넉히 있었더라도 나의 것은 사지 못했을 것이다. 딸 물건 다음에 아들 것, 그 다음에 남편 것, 이런 식으로 결국은 나의 것은 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윗세대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엄마나 이런 아내를 자식이나 남편이 알아 주는가? 그것도 아니다.

한날, 초등학생 몇이 내 옆을 지나가면서 말했다.
“ 야. 동혁이 걔 되게 불쌍하드라. 걔네 엄마 오늘 학교에 왔는데 옷이 이상해, 그리고 머리가 떡 됐어” 이러는 거다.

아는가? 나의 입성 때문에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불쌍하게 비춰지는 게 요즘 아이들 시각인 것이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 가을 향기가 묻어난다. 서산으로 지는 태양의 각도가 달라져 있다. 이 가을에 남모르게 가슴 무너지는 아줌마들이여. 내 안과 밖, 내 영혼과 그것을 감싸는 나의 소중한 몸을 잘 돌보자.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남자친구가 있든 없든 내가 내적으로 쌓아올리지 않는 한, 진정한 안정감이라 없다고 하지 않는가!.

◎ 글/이성덕 나에게 과제를 던져준 두 젊은 여성 (2006,8月-통권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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